취업문을 통과하여 꿈에 부풀어 입사한 후 맡은 첫 업무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사실 프로그래머는 어렸을적부터 꿈꿔오던 일이었는데, 의사이자 백신개발자인 안철수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DOS 시절 무료로 배포되던 백신으로 동네 방네 바이러스를 치료하러 불려다니던 시절이었다. 사람을 고치는 일과 컴퓨터의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일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대단하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입사한 후에 내가 겪었던 프로그래머의 세계는 많이 달랐다. 우선 프로그래머는 소위 말하는 높은 사람들이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누구나 나이가 되면 메니저가 되어 프로그래머를 잘 관리하는 것이 수순이고, 그런 분위기에서 프로그래머는 신입사원에게는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지만, 경력이 쌓이면 PM을 준비하는 것이 회사생활을 연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물론 내가 입사한 회사가 SI였고, SI의 생태계는 소위 갑,을,정으로 불리우는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는 대표적인 업종이기 때문이다.
즉 A라는 회사에서 1억원의 개발 프로젝트를 발주하게 되면, B라는 회사는 이중 5천만원을 챙기고, 중견 업체인 C라는 업체에 5천만원으로 하청을 준다. C업체는 3천만원을 챙기고 2천만원으로 D라는 업체에 하청을 주면 D업체는 프리랜서 개발자나 초급 개발자에게 천만원을 주어 개발을 하게하고 나머지는 수익으로 챙기는 식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서 초급 개발자나 프리랜서의 개발 경력을 뻥튀기하여, 마치 경력이 많고 연차가 많은 것처럼 속이지만, 학원을 막 졸업(?)한 초보 개발자들이나 신입사원들이 이런식으로 투입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다루는 컬럼이나 자료가 많기 때문에 다시 같은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생태계 속에 길들여진 우리 문화가 현재의 아니면 앞으로의 "IT의, IT에 의한, IT를 위한"로 모멘텀이 바뀌는 기업환경에서 결코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하고 싶었다. 그것은 나로부터 오는 탄식이자 제발 이제는 바뀌자라고 하는 간곡한 요청이기도 하다.
미래가 없는 곳에 열정이 있는 개발자가 생길 수 없다. 그리고 열정이 없는 개발자가 만드는 소프트웨어의 품질은 결코 좋을리 없다. 이것은 노동자에게 좋은 연봉과 복지를 제공하라는 계급투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IT가 비지니스를 서포트하는 서비스 업종에서, 이제 비지니스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기존의 모든 비지니스 도메인은 IT와 융합될 것이다. 즉, IT는 모든 비지니스의 메인업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변화속에 예전처럼 프로그래머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이유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기 위해서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 그 열정을 위해서는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도 코딩을 하는 나의 뒷시선은 부담스럽다. "요즘도 코딩을 하나?", "나도 한때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계속 코딩하려고??" 라고 말하는 이의 배경엔 프로그래머에 대한 편견이 가득하다. 프로그래머는 아무나 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 프로그래머들은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시선. 그것이 아직 이곳이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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