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청춘을 보고 기획했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비록 아주 소소한 꿈이지만, 이것이 내 꿈인지조차 잊고 살아왔었기에, 더 나이가 들어서 못하기 전에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나의 청춘을 함께 했던 벗들을 찾아헤메는 것도 조금은 힘이 들었다. 이제는 모두 각자의 일상이 있었고, 사사로운 여가를 허락하지 않는 직장이 있었고, 옛 벗들 보다 소중한 가족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들의 일상에서도 조그만 일탈을 꿈꾸는 이들이 있었고,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기자인 A형과 의사인 B형이 동행을 하기로 했다.
여행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고민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민과 닮아 있다. 잠시 떠났다가 언젠가는 돌아가야하는 여행의 처음과 끝은 인생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의 답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단순히 편안하고 푹 쉬다 오는 여행보다는, 걷고, 보고, 충분히 자극받고, 피곤해지는 여행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이번 여행을 단순히 관광이 아닌 잊어버렸던 꿈을 다시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상, 편안한 여행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주기적으로 여행의 목적과 여행 루트, 그리고 스쿠터에 대한 정보를 카톡으로 날렸다. 그저 시간이 되서 잠시 갔다가 또 잊어버리고 마는 그런 여행을 반복하기가 싫었다. 이런 호들갑 때문인지 형들도 꽤나 여행에 대한 기대가 커진 듯 했다.
일주일을 남겨두고 기자 A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얼마전 바뀐 직책으로 인해 업무가 바빠져 도저히 시간을 낼 수 가 없겠다고. 정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한순간 이번 여행이 무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에 대한 기대만 잔뜩 부풀게 하고 둘이서만 떠나기엔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또다시 미룬다면 어쩌면 다음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거 같았다.
결국 그렇게 남자 둘만의 제주도 여행은 시작되었다.
이제 무엇보다 걱정은 날씨였다. 우리가 여행을 계획한 정확한 그 날짜에만 비가 오는 걸로 예보되었다. 그것도 많이. 처음부터 스쿠터를 타고 일주하기로 기획한 이상, 바꿀 수는 없고 난감했다. 사고라도 나면 정말 큰일이니깐. 하지만 또 계획을 바꾸는 것도 마땅치가 않아서 기획자로서 부담 백배였는데, 다행히 B형이 무조건 긍정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도에 도착했고, 아직 비가 내리지 않는 제주도의 첫 날의 일주를 스쿠터로 시작했다.
스쿠터를 처음 탔을 때는 30km의 속도에도 불안해서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안정이 되어 가고 제주도의 도로에도 적응이 되어 가면서 7~80km 정도로 운행을 했다.
계획했던 대로 되도록이면 모든 해안도로와 중간 중간을 잇는 국도를 달리면서 제주도의 모든 바다를 보면서 가기로 했고, 계획 했던 지점들을 가기보다는 도로마다 나오는 곳곳을 그냥 둘러보고 즐기기로 했다.
스쿠터의 선택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리도 제주도의 곳곳을 빠르고 세밀히 다가가서 볼 수 있을까. 렌트카로 다녔던 제주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제주도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자연의 바람을 받으면서 바다의 물결을 느끼면서. 자연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그리고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음을 세삼 느끼게 되었다.
제주도의 자연과 함께 빠질 수 없는 음식. 하지만 유명한 음식점에 무작정 찾아갔다가는 바가지만 쓰고 결과는 처참하기 일쑤이다. 갑자기 쏟아부은 폭우를 피해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비에 젖은 옷과 헬멧을 벗고 따뜻한 해물탕 한그릇은 정말 감격 그 자체다. 조미료로 감미된 인위적인 맛이 아니었다. 바다를 느꼈다고 하면 너무 오버일까. 따뜻한 해물 뚝배기와 바다에서 건진 해조류와 밑반찬이 얼었던 몸을 금세 녹여주었다.
새벽에 재난문자를 받으면서 이 여행이 지속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폭우에 낙뢰에 산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외출자제를 당부했다. 그냥 다녀도 위험한데 이 비속에서 어떻게 스쿠터를 타야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B형에게 '우리 스쿠터 그만 반납할까요'라고 물어보려는데, 형이 먼저 일찍 나서자고 한다. 제주도에 비가 오면 생기는 유명한 폭포가 있다고. 엉또폭포라고 아이러니하게 비가와야 유일하게 사람이 많아지는 곳이라고 했다.
비속을 헤쳐가면서 얼마를 달렸을까, 차와 사람이 벌써부터 붐비는 곳이 보였다. 우비를 쓰고 여기저기 모여드는 사람들. 비를 맞고 환생하는 폭포의 웅장한 광경을 보기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천지연 폭포, 천제연 폭포 등 제주도의 유명한 폭포들이 있지만, 마음먹은대로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엉또 폭포의 웅장함을 보러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웅장한 폭포 소리에 비가와서 생겼던 모든 근심이 사라진듯 했다.
그렇게 또 비를 맞으면서 스쿠터를 타면서, 비오는 제주도의 바다를 보면서 달리고 달리다가, 성산일출봉 근처의 숙소에 도착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음 또 제주도의 맛집을 찾아가기로 한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적극추천한 한 횟집. 다른 횟집처럼 크고 스끼다시 위주의 횟집이 아니라 정말 맛있는 곳이라고. 처음 먹어보는 고등어 회였는데, 정말 싱싱하고 부드러웠다. 김에다가 직접 만들어주신 소스에 담긴 마늘과 고추를 싸서 먹는게 포인트. 뱃사람 전통방식이란다. 회를 먹고 앞바다에서 막잡아온 문어를 듬뿍 넣은 라면도 일품. 역시 현지인이 추천하는 음식점이 제대로 인 것 같다.
성산 일출봉에서 가까운 우도까지 가기로 했다. 날씨가 안좋아 일출봉에 오르기도 그렇고 이렇게 제주도를 떠나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우도까지 스쿠터 일주에 포함하기로 한 것. 하지만 큰 너울 때문에 스쿠터를 실을 수가 없어, 우도에서 다시 스쿠터를 빌려야 했다. 덕분에 반나절도 안돼서 우도를 한바퀴 돌 수 있었다. 정말 속이 비치도록 투명한 바닷물을 보면서 한때 한 유명한 음료 광고를 찍었던 명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도가 금세 파도가 집어 삼킬 듯 일었지만, 그것이 주는 광경에 감탄하며 같이 사진을 찍었다. 남자 둘이서만 갔던 여행인지라 같이 찍은 사진이 없다. 누구에게 부탁을 해도 되겠지만, 그냥 서로 각자의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사진도 서로 번갈아 찍어주면서 이렇게.
안개가 잔뜩 끼어 희미하게 보였지만 우도 팔경중의 하나인 후해석벽의 웅장한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해외에 굳이 나가지 않고도 이렇게 자연이 만든 위대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놀라웠다. 섬속의 작은 섬에 숨겨진 명소들. 다만 날씨가 좋지 않아 그 진면목을 볼 수 없었다는게 아쉽다. 날씨가 좋을때 배를 타고 동안경굴을 보는 것도 환상적일 것 같다.
제주도의 마지막 장식은 흙돼지. 공항에서 거리가 좀 있는 곳이지만, 맛집으로 유명한 집이기에 일부러 들렀다. 비를 맞으면서 긴장하면서 스쿠터를 탔던지 몸이 녹초가 버렸는데, 배부르게 먹은 흙돼지 구이와 숯불의 열기 때문에 노곤해져 버렸다. 하지만 난 역시 이런 소문난 맛집보다 현지인이 추천해준 소박한 음식점들이 맘에든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저렴하고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는 맛이랄까. 여긴 그냥 음식점이었다.
이렇게 오래 계획했던 제주도 여행을 마쳤다. 기대가 큰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그만큼 남는것도 많았던 여행이다. 아마도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것도 가미되어 이번여행이 좀더 특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비를 맞으면서, 우의를 거꾸로 입은채로 제주도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두 남자의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이번 여행을 통한 여운은 조금 더 오래 갈 것이라 확신한다.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내가 왜 사는지도 모른채, 막연히 쳇바퀴속의 다람쥐처럼 매 순간이 살아지는 때가 있다. 아무런 행복도 감정도 없이 그렇게 꿈꾸었던 것을 잊은채로 살아가는 삶에 이런 단비같은 여행이 있어 행복했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작은 스쿠터 한대에 앉아 숨어있던 제주도의 화려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다음 여행을 기획하는 순간이 이번에는 좀더 빨리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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