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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한 일상

다섯살 말광량이 길들이기, 서른 다섯살 철없는 어른 성장하기


다섯살 말광량이 이야기



만 3년 7개월, 벌써 다섯살입니다. 이제 갓난 아기 때 어떤 모습인지 기억하려면 한참을 생각해야 합니다. 밤낮없이 울어대는 통에 한숨 자기도 힘들던 때, 이 시기만 빨리 지나게 해달라고 소망하던 때가 언제였던가요. 이제는 다 컸다고 애교도 부리고 말도 제법 잘하는 아이가 되었답니다. 다섯살 어린 아이는 말광량이가 되어서 장난도 제법 치고 혼자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보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겨울 왕국의 노래소절을 다외워서 밤낮없이 "다잊어~"를 열창하곤 합니다. "흥~" 하고는 토라져서는 말도 안되는 짜증에 온 식구가 다 애를 먹기도 하구요. 서른살의 철없던 부모도 이제 같이 서른의 다섯살이 되었습니다. 한번도 부모가 되보는 것을 연습해본적이 없었던 철없는 어른 아빠는 아기를 어떻게 만질지도 몰랐습니다. 더구나 내가 아닌 누구에게 무수히 많은 부분을 돌보아주고 시간을 할애해야하는지, 또 그것이 일상의 일부분을 포기하는 것인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게 아빠가 되어 가다


아빠가 되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나의 2세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무한한 책임감과 동시에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주위 출산이 임박한 아빠나 엄마에게 "이제 시작"이라며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놀리는 이유입니다. 아이가 울면 졸려가는 눈을 비벼가며 부부간에 가끔은 서로 봐줬으면 하는 바라는 마음이 커져갑니다. 아이가 없던때엔 상상하기 힘들던 부부 갈등도 생기기 마련이지요. 가끔은 아이와 말하다가 아이보다 더 유치해질 수 있음에 진심 놀라기도 합니다. 아이는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에 대한 태도 또한 분명한데도, 그 태도에 대한 어른의 반응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외할아버지한테 존대말을 하는 이유를 물으니 "할아버지는 한번도 화낸적이 없잖아" 라고 합니다. 감정적일 수 있는 훈계에 후회를 많이 합니다. 피곤하거나, 그냥 귀찮거나, 아니면 정말 힘들거나. 어른들한테는 이유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목적을 위해 달려들지요.




아이는 세상을 알아가고, 어른은 철이 들어가고


다섯살의 아이와 서른 다섯살의 어른. 만난지 만 4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언제 커서 말도하고 걸어가고 사람이 될까 했는데 그 시간은 길지 않았네요. 철없는 어른이 아이의 성장을 보면서 조금씩 철이들어갈때 아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조금씩 세상을 바라볼 준비를 합니다. 아이가 바라볼 세상은 내가 살았던 세상보다 더 크고 그래서 더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어른으로서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것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음에 뼈속까지 책임감을 느낍니다. 내 아이가 살아가는 방식, 내 아이가 살아가는 방법, 그리고 세상의 밝은 점과 어두운 점을 헤쳐나가는 방법. 이것의 시작이 지금 아이와 저의 그리 길지 않은 함께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좀더 철이 들어야 겠습니다.